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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(386)피 어린 산과 언덕(10)

    1952년 7월 한국을 방문한 영국 「로이드」국무상은 그의 귀국담에서 『한국전쟁의 현 전황은 전 전선에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휴전회담을 틈타 전력을 보강한 중공군이 일대공세를 취

    중앙일보

    1972.10.23 00:00

  • 대통령 10월17일 특별 선언-전문

    『친애하는 국민 여러분, 나는 우리 조국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번영을 추구하는 국민 모두의 절실한 염원을 받들어 우리 민족사의 진운를 영예롭게 개척해 나가기 위한 나의 중대한 결심

    중앙일보

    1972.10.18 00:00

  • 한적 대표단 북한방문일지

    ◇29일 ▲상오10시3분 한적 대표단「돌아오지 않는 다리」넘어 북한에 첫발. ▲낮12시30분 사리원 도착. 사리원 여관에서 휴식. ▲하오2시25분 평양도착. 문수리 초대소에 여장을

    중앙일보

    1972.09.02 00:00

  • 남녀가 다 가방 들고 출근

    평양시민들은 아침에 시차제 출근이어서 혼잡한 교통「러쉬」는 없다고 숙소안내원이 말했다. 출근수단은 무궤도 전차·「버스」등이 대부분. 남자들은 많은 사람들이「브리프·케이스」같은 손가

    중앙일보

    1972.08.31 00:00

  • 「이산가족 찾기」…대화 모색 3백42일|남북적 본 회담 앞으로 보름…그 예비 회담 발자취

    남북적십자 본 회담이 오는 8월5일 드디어 그 막을 올리게 됐다. 분단 4반세기만에 7·4 남북 공동 성명과 함께 길고도 먼 대화의 길은 본격화되었다. 앞으로 보름 남짓-. 준비

    중앙일보

    1972.07.20 00:00

  • 본 회담 대표단 구성에 합의

    【판문점=임시취재반】14일 상오11시 판문점에서 열린 제22차 적십자예비회담에서 남-북한 양측은 본 회담대표단의 수석대표(단장)를 쌍방적십자의 책임자 또는 부 책임자로 선정할 것에

    중앙일보

    1972.07.14 00:00

  • 한적서 초대 호화판 오찬|신선로등 갖가지 한식메뉴16종

    【판문점=임시취재반】남·북 대표들과 수행원들은 3일 오전회의를 마치고 낮1시15분부터 중립국감독위 휴게실에서 한적이 마련한 우리 나라 고유의 한정식으로 점심을 같이 들었다. 한적이

    중앙일보

    1971.11.03 00:00

  • (221)남과 북의 포로수용소(13)|「도드」준장의 피랍(2)

    「유엔」군 사령관직을「마크·클라크」장군에 인계하던 중 도드 준장 피랍사건에 직면한 「매듀·B·리지웨이」대장은 이 사건을 자기 책임 하에 단호한 태도로 해결할 결심으로 한국에 비래했

    중앙일보

    1971.08.30 00:00

  • 휴전 18년

    27일은 휴전협정이 조인된 지 18년이 되는 날이다. 1953년 7월27일 판문점에서 「유엔」군 총사령관과 북괴군 최고사령관 및 중공인민지원군사령관사이에 휴전협정이 조인됐으며, 그

    중앙일보

    1971.07.26 00:00

  • (298)삿대질·고전 20년의 남북창구 판문점 이곳에도 미묘한 해빙여파가…|글 최규장 기자·사진 이창성 기자

    판문점의 비극이 시작 된지 20년이 흘렀다. 1951년7월8일 「유엔」측과 공산측이 십자포화를 무릅쓰고 개성시 봉래장에서 첫 대면을 나눈 뒤부터 정전회담이 성립, 그해 9월6일

    중앙일보

    1971.07.24 00:00

  • 「개입도」축소와 「힘의 보장」요구와

    12일부터 이틀동안 서울서 열리는 제1차 한미 안보협의회는 「해빙」으로 상징되는 「닉슨」의 세계정책의 방향에 따라 한국에서의 「개입도」를 줄이려는 미측과 한반도정세의 예외성을 들어

    중앙일보

    1971.07.12 00:00

  • 판문점에 돌아온 중공대표

    16일 주한 유엔군 당국은 중공이 지난 12일자로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중공대표로 하거약을 임명했다고 밝히고, 하가 다음 본회의부터 판문점에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. 이는

    중앙일보

    1971.06.17 00:00

  • 대남 교란 공작

    북괴의 소위 최고 인민회의 제4기 제5차 회의는 4월12일 북괴 외무상 허담으로부터『현 국제정세와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촉진시킴에 대하여』라는 장문의 보고를 받고 형식적인 토론을

    중앙일보

    1971.04.15 00:00

  • 한국안보 4반세기와 미국|포터 주한대사의 기조보고

    (1) 미국상원외교위원회의 안보협정 및 해외공약분과위원회(위원장 스튜어트·사이밍턴 의원)는 작년 11월부터 금년 2월에 걸쳐 극동 여러 나라에 대한 미국의 공약실정을 철저히 규명하

    중앙일보

    1970.09.19 00:00

  • (238)대성동에 졸업식이 있던 날

    여기저기 가시 철망만이 널려져있는 비무장 지대 안, 육지 속의 섬인 대성동 마을 국민학교는 12일 가장 조그마하면서도 가장 화려하고 축복 받는 졸업식을 가졌다. 졸업식장은 마을 언

    중앙일보

    1970.02.14 00:00

  • 기도와 눈물로 부른 "푸에블로〃|부커함장부인이 말한 상처받은 11개월

    일본의 횡수하에 기지를 둔 미국 정보수집합「푸에블로」호(706)는 68년1월23일 동해안원산앞바다에서 정보활동중 북괴에 나포되어 사망한 1명 제외한 82명의 전승무원이 포로가되었다

    중앙일보

    1969.06.03 00:00

  • 미대사관 앞에 가자고도

    5일상오 영빈관에서 열린 공화당의 당·정협의회는 정부쪽에서 정총리이하 관계장관,당 쪽에서 김당의장을 비롯한 당간부전원이 참석,미·북괴간의 두차례에 걸친 판문점비밀협상에 관해 최규하

    중앙일보

    1968.02.05 00:00

  • 굴곡 큰 정국

    광복의 날 1945년 8월15일. 민족해방의 8·15는 바로 비극적 민족분단의 시발점이기도 했다. 36년간 지배자로 군림했던 일제가 물러간 한반도는 38분계선을 사이에 둔 채 남북

    중앙일보

    1967.08.15 00:00